채식주의자 - 폭력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려 한 영혼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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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의 갑작스러운 육식 거부가 불러오는 파멸적인 과정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 욕망, 그리고 광기의 경계를 탐색하는 강렬한 소설입니다. 평범한 일상에 숨겨진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한 방울의 피도 거부한 그녀, 나무가 되려 하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남편의 말에 따르면 "특별한 매력도, 단점도 없는" 아내 영혜가 어느 날 꿈을 꾼 뒤 육식을 거부하기로 선언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단순한 선언은 고요한 수면 위로 던져진 돌멩이처럼, 그녀의 삶과 주변 인물들의 세계에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킵니다. 1부 '채식주의자'는 남편의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아내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에게 채식은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아내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비상식적인 일탈 행위일 뿐입니다. 그의 시선은 철저히 타자화되어 있으며, 영혜의 내면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사회적 체면과 불편함을 우선시합니다.
소설의 첫 번째 균열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영혜의 거부는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행위를 넘어, 가부장적인 남편과 폭력적인 아버지로 대표되는 억압적인 세계 전체에 대한 소극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저항입니다. 끔찍한 피의 이미지로 가득 찬 꿈에서 깨어난 영혜에게 육식은 세상의 모든 폭력성을 응축한 행위와 같습니다. 그녀는 폭력을 섭취하기를 거부하고, 나아가 폭력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합니다.
이 거부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잔인한 폭력으로 되돌아오는지는 친정 식구들과의 식사 장면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아버지는 딸의 입에 강제로 고기를 쑤셔 넣고, 그 순간 영혜는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처음으로 내면의 상처를 외부로 표출합니다. 이 장면은 영혜의 채식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존재 자체를 건 생존 투쟁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녀는 육식을 거부함으로써 인간 세계의 폭력적인 먹이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 최초의 거부는 이후 그녀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식물이 되고자 하는 필사적인 여정의 시작점이 됩니다. 평범함 속에 감춰져 있던 광기와 폭력이 한 개인의 작은 저항을 통해 어떻게 터져 나오는지, 한강 작가는 냉정하고도 집요한 시선으로 포착해냅니다.

폭력의 시대, 가장 연약한 방식으로 저항하다.

소설의 2부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 아티스트의 시점으로 전환되며, 이야기는 욕망과 예술, 그리고 착취의 경계에 대한 위험한 질문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는 처제인 영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푸른 몽고반점에서 기묘한 생명력과 예술적 영감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영혜는 더 이상 처제가 아니라, 순수하고 원시적인 생명력을 지닌 예술적 오브제입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욕망과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혜는 스스로를 식물과 동일시하며 형부의 제안에 기꺼이 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사회적 규범이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자연의 캔버스가 됩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몸에 꽃을 그리고 관계를 맺는 장면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기괴하고 불편한 순간입니다. 과연 이것은 두 예술적 영혼의 교감인가, 아니면 한 남성이 정신적으로 취약한 여성을 자신의 예술을 위해 착취하는 과정인가.
작가는 결코 쉬운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형부의 시선은 분명 영혜를 대상화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그녀의 내면의 식물성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영혜의 저항 방식은 여기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그녀는 이제 단순히 폭력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인간 세계의 논리와 이성을 파괴하고 식물의 세계로 넘어가려 합니다. 그녀의 몸은 사회적 폭력에 저항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가장 연약한 무기입니다. 형부와의 행위는 그녀에게 있어 인간적인 욕망의 발현이라기보다는, 식물로 변태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처럼 보입니다.
이 파격적인 서사를 통해 한강 작가는 예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대상화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독자들에게 윤리적인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상처받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예술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인가.

상처받은 영혼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가.

소설의 마지막 3부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인혜는 평생을 사회의 규범과 기대를 충실히 따르며 살아온, 지극히 상식적이고 책임감 강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미쳐가는 동생을 돌보며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이제 음식 자체를 거부하며, 오직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려는 '나무'가 되어갑니다. 그녀는 물구나무를 서서 뿌리를 내리려 하고,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햇빛을 받으려 합니다. 인혜는 그런 동생을 이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깊은 고통과 혼란에 빠집니다.
이 마지막 장에서 소설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사회의 룰에 맞춰 묵묵히 자신의 삶을 견뎌내는 인혜와, 모든 인간적인 것을 거부하고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영혜 중 누가 더 구원에 가까운가. 인혜는 동생을 보며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의문을 품습니다. "왜, 그 애가 잘못됐다고 누가 말할 수 있지?"라는 그녀의 독백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영혜의 마지막 모습은 숭고하면서도 처절합니다. 그녀는 인간 세계의 모든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소멸을 택합니다. 그녀의 광기는 어쩌면 이 폭력적인 세상에 대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저항이자, 상처받은 영혼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끝내 영혜가 어떻게 되었는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앰뷸런스에 실려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생을 바라보는 인혜의 막막한 시선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열린 결말은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과 함께 무거운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이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가. 『채식주의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각자의 몫임을 이야기하며,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마음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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