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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숙제 같은 인생, 축제 같은 인생: 무거운 하루를 바꾸는 변화와 기술

by lifewhispers 2025. 10. 4.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잔인함의 경계를 묻는 한강 작가의 소설입니다. 역사의 상흔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관통하는지, 그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왜 인간이어야 하는지를 처절하게 증언합니다.

아름다움이 잔인함에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행위는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잊혀진 감각을 일깨우고 외면했던 진실을 맨몸으로 마주하는 일종의 '증언 참여'에 가깝습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1980년 5월의 광주, 그 처절했던 현장의 한복판으로 소환됩니다. 소설은 '너'라는 2인칭 시점을 통해 끊임없이 독자를 호명하며, 죽은 소년 '동호'의 시선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고통을 마치 나의 일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이 소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건을 건조하게 나열하는 역사서가 아니라, 피와 살이 튀는 고통의 감각을 독자의 신경계에 직접 이식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도청에 남겨진 시신들의 부패하는 냄새, 총알이 박히는 소리, 고문실의 축축한 공기까지, 작가는 언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그날의 참상을 재현합니다.
동호의 친구 정대가 겪는 영혼의 분리, 덧없이 죽어간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던 이들의 슬픔,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국가는 왜 자국민에게 총을 겨누었는가. 인간은 어떻게 다른 인간에게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모든 폭력과 야만 속에서, 마지막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책을 읽는 내내 무력감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작가는 독자가 편안하게 이 이야기를 소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 그 고통의 근원을 스스로 질문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강 작가가 역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입니다. 소설은 그날의 죽음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이름과 얼굴, 꿈과 사랑을 가졌던 한 명 한 명의 우주였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일깨워줍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광주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입니다. 폭력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도, 서로의 시신을 닦아주며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희미한 빛을 발견합니다. 그 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 인간성의 증거이며, 이 책이 단순한 비극의 서사를 넘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죽은 자의 눈으로 살아남은 자의 삶을 묻다.

『소년이 온다』의 시간은 1980년 5월에 멈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날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트라우마가 한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잠식해 나가는지를 섬세하고도 잔인하게 그려냅니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광주는 끝난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고통이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감옥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살아남았지만, 그들의 시간과 영혼은 그날의 도청과 금남로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끊임없는 검열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은숙, 끔찍한 고문의 기억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없게 된 선주,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파괴해가는 이들의 모습은 '생존'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 소설이 특히 탁월한 지점은, 국가 폭력이 한 개인에게 남기는 상흔이 단순히 정신적 고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관계의 파괴로, 사회로부터의 고립으로, 그리고 끝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광주'라는 꼬리표 아래 기피와 오해의 대상이 되며,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온전히 이해받지 못합니다. 역사의 거대한 비극 앞에서 개인의 고통은 너무나 쉽게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지만, 한강 작가는 그 사소하게 여겨지는 모든 균열과 상처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기억'과의 투쟁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잊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그 기억은 동시에 그들을 현재에 발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됩니다. 잊는 것은 죽은 이들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지고, 기억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신을 향한 형벌처럼 다가옵니다. 이 딜레마 속에서 그들은 서서히 부서져 갑니다. 사회는 너무나 쉽게 '화해'와 '용서'를 말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지만, 이 책은 섣부른 봉합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를 고발합니다.
진정한 애도와 치유는 그날의 진실을 온전히 직면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을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누어질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음을 소설은 역설합니다. 이것이 『소년이 온다』가 단순한 고발 문학을 넘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치유와 성찰의 텍스트로 읽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도착한 날카로운 질문.

『소년이 온다』는 과거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그 질문의 칼날은 현재를 향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히 짓밟히는 순간, 당신은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소설 속 시민들이 총칼 앞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고 애국가를 불렀던 이유는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폭력 앞에서 마지막까지 '사람'으로 남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작가는 이들의 행위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 본질에 대해 깊이 파고듭니다.
소설의 후반부,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에필로그는 이 책이 왜 쓰여졌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것은 망각과의 싸움이자, 폭력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광주는 40여 년 전의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재현될 수 있는 폭력의 원형질과도 같습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다수의 이름으로 묵인되는 차별과 혐오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에 놓여 있습니다. 이 책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충격을 주는 이유도 바로 이 보편성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지식'으로만 소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는 역사를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통과하게 만듭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연결될 수 있는 연대의 감각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저는 오랫동안 광주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교과서 속의 단어가 아니라, 한 소년의 얼굴과 그의 어머니가 부르짖던 절규,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깊은 눈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결코 쉬운 독서 경험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깊은 상처와 슬픔을 남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상처야말로 우리가 이 비극을 잊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소년이 온다』는 우리 시대의 필독서이자, 인간의 영혼이 지닌 가장 연약하고도 가장 강인한 힘에 대한 숭고한 증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