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 나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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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리뷰 – 시와 필사의 만남으로 만든 위로의 시간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는 나민애 교수가 직접 고른 인생 시 77편을 담고, 필사의 여백까지 제안하는 책입니다. 
흔들리는 마음 한 켠에 ‘단 한 줄’의 문장을 새긴다는 것, 그 행위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는 작품입니다.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책 표지

시를 따라 쓰며 나의 언어가 되어 가는 경험

이 책은 단순히 시를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필사’하게 합니다. 나민애 저자는 서문에서 “시(詩)를 종이에 눌러썼더니 흩어졌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라고 고백합니다. 필사는 읽기보다 더 깊은 체험입니다. 손끝으로 문장을 따라가고, 언어의 호흡을 느끼며, 때로는 문장 속 쉼표의 위치에서 자신을 멈추게 하죠.

필사를 통해 우리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마음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엄선된 77편의 시는 세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정지용, 나태주, 이병률, 황인찬 등의 시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자는 각 시를 읽고, 저자가 덧붙인 해설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각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왜 이 문장 앞에서 멈췄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예컨대 시 「국수가 먹고 싶다」(이상국)의 한 줄처럼 작고 일상적인 욕망이 곧 삶의 온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필사는 이 깨달음을 손끝으로 ‘기록’케 하고, 언어의 감각을 나 자신의 리듬으로 바꾸는 통로가 됩니다. 저는 이 책을 펼치고 하루에 한 문장을 ‘베껴쓰기’ 한 뒤 그 문장이 내게 어떤 울림을 남겼는지 메모하는 습관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언어에 대한 민감도가 조금 달라졌고, 어떤 날엔 책갈피 대신 노트를 꺼내 들게 되었습니다.

함께 읽고 싶은 시 77편이 만드는 마음의 지도

책이 주목하는 지점은 ‘선택된 시’의 힘입니다. 저자는 필사 노트라는 형식을 빌려, “77편의 시에, 77가지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그중 단 한 줄이라도 당신 마음에 머문다면 이 책은 이미 제 몫을 다한 셈입니다.”라는 문장을 전합니다. 이 말처럼 읽는 이는 ‘나만의 인생 시 리스트’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처음 맛보는 시”, “작은 위로가 필요한 날”, “사랑을 곁에 두었다”, “가을이나 바람처럼 쓸쓸한 것들”, “나에게 말을 건네는 시”와 같은 다섯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섹션마다 분위기와 감정의 결이 다르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구성 덕분에 독자는 특정 감정이나 상황에서 적절한 시를 꺼내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조금 외롭고 말이 필요 없을 때”엔 ‘가을이나 바람처럼 쓸쓸한 것들’ 섹션에서 위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필사의 여백은 독자에게 새로운 공간을 제공합니다: 시를 읽고 곱씹은 뒤, 나만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가는 여백. 그 여백 속에서 마음은 차분해지고, 읽기만 했던 시가 ‘내 말’이 됩니다.

언어가 흔들릴 때 붙잡아주는 한 줄의 힘

이 책이 특히 돋보이는 점은 ‘시의 힘’을 일상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흩어졌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라고 표현했듯이, 언어가 흐트러질 때 우리는 그 한 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지난날 저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쓸쓸함이라 부르며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한 줄을 베껴 쓰면서 그 감정이 ‘지난 하루’가 아닌 ‘지금 여기’로 환기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필사는 멈춤이기도 하고, 회복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비판적으로 보면, ‘필사’라는 행위가 또 다른 의무처럼 느껴질 수 있고, 시 선택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을 경우엔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부담을 줄입니다. ‘단 한 줄이라도’라는 말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한 번 읽고 덮는 대신, 손으로 써서 남기는 행위가 언어를 나의 것으로 바꾸는 통로가 됩니다.

독자 여러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오늘 한 문장을 필사해 보세요. 그리고 그 문장이 ‘내 하루’로 남았는지, ‘내 마음’으로 남았는지 스스로 묻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이 책은 그렇게 작지만 단단한 틈을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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