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리뷰 – 기술과 연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희망의 파랑
『천 개의 파랑』은 가까운 미래, 휴머노이드 로봇과 동물과 인간이 함께 존재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연대와 회복을 그려낸 SF 소설입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고 소외된 존재가 흔해진 사회에서, 상처받은 존재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빛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종을 넘어선 연대가 만들어내는 파랑의 물결
이 소설은 ‘인간 VS 기계’라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섭니다.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경주마 ‘투데이’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마주하고, 상처를 가진 인간 아이 ‘연재’와 ‘은혜’가 이들 곁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경계를 지우고 ‘같이 있음’의 의미를 되묻게 합니다.
저자는 이 세계에서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과 감각을 다시 묻는 장치가 된다고 말합니다. 인간도, 로봇도, 동물도 ‘살아 있음’으로서 고유한 존엄을 갖는 존재입니다. 이 고찰은 단지 머리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기수가 말 위에서 느끼는 바람의 저항, 로봇이 자신의 몸을 인식하며 느끼는 “나는 움직인다”라는 감각, 인간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도 느끼는 ‘나의 속도’의 의미—이런 디테일들이 모여 ‘파랑’이라는 색감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천 개의 파랑’이라는 제목이 단지 색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존재들의 존재함”을 의미하는 메타포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너무 빠르게 질주하는 세상에서, 저자는 ‘천’을 곱하게, ‘파랑’을 깊게 바라보라고 권하는 듯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서 “나도 나만의 파랑이 될 수 있다”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기술과 고통, 그 너머에서 마주하는 인간성의 기록
이 작품이 더욱 특별한 건 그 미래가 낯설지 않다는 점입니다. 로봇이 기계적 존재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갖고, 실수를 하고, 살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휠체어를 타야 하는 은혜, 경주마로서의 삶을 마감해야 할 투데이, 몸을 작은 로봇으로 설계된 콜리—이들 모두는 ‘표준적 존재’ 바깥에 서 있습니다.
그 바깥에서 생겨나는 불확실성, 누락된 감각, 버려진 존재들이 이 소설의 중심입니다. 저자는 이 낙오된 존재들이 서로에게 돌아설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여줍니다. 한줄평처럼 “상처가 연대를 만든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가 아니라, 기계가 인간으로, 인간이 기계와도 함께 살아가는 미래—그 교차점이 바로 이 이야기의 축입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와 함께 달리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보조이며 나는 누구를 보조하는가?” 그 질문들이 기술의 속도로 잊히지 않고 마음 한쪽에 머물렀습니다.
읽은 이후에도 지속되는 질문과 다정한 희망의 잔향
『천 개의 파랑』은 읽는 동안 심장이 뛰고, 읽은 뒤에도 생각이 머무르는 작품입니다. 저자는 극적 반전이나 폭발적 클라이맥스 대신, 서서히 적립되는 감정과 연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독자인 저는 책을 덮은 후에도 ‘내가 속한 연대’, ‘나의 파랑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영화화·뮤지컬화 기획 중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만큼 이야기의 스펙터클함만큼 서사의 감동과 정서적 울림이 크다는 뜻이 아닐까요. 장르 소설이지만 특정 독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각과 연대를 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본격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설정이 조금 낯설거나 빠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새로운 감각을 열어줍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기술과 연대, 존재와 속도의 관계를 다시 생각했고, 그 변화의 출발선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도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의 품위 - 최서영 (0) | 2025.10.22 |
---|---|
메리골드마음사진관 - 윤정은 (1) | 2025.10.21 |
잘 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 최서영 (0) | 2025.10.20 |
하는일마다 잘되리라 - 전승환 (0) | 2025.10.20 |
메리골드마음세탁소 - 윤정은 (0) | 2025.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