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 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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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리뷰 – 상처 위에 세워진 읽기의 예술

『절창』은 상대의 상처를 통해 그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구병모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입니다.
제목이자 핵심 키워드인 ‘절창(切創)’이 상처의 이미지와 읽기의 메타포를 동시에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독자를 오래 머물게 하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

절창 책 표지

상처를 통해 타인을 읽어내는 능력과 그 위험성

이 소설의 중심에는 누군가의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자리합니다. 작가가 제목에 명시한 ‘절창’이라는 단어는 “칼이나 유리 조각 따위의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라는 뜻입니다. 주인공 ‘아가씨’는 이 능력을 이용해 타인의 상처 속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드러나는 말과 침묵, 왜곡과 오해의 층위를 섬세하게 탐색합니다. 하지만 이 능력은 축복이기보다는 폭력적이거나 저주에 가까운 것으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독자가 누군가를 완전히 읽을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이야기 속에서 아가씨가 읽어내야 하는 대상이자 동시에 읽히는 존재인 ‘오언’은, 겉으로 보이는 존재와 내면의 틈새 사이에서 미끄러지고 복잡해지는 관계의 구조를 통해 읽기와 오독의 경계를 드러냅니다. 블로그 한 평론가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오독을 수반한다.” 작가는 독자를 향해 묻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이 소설 전체를 관통합니다.

말하기·듣기·읽기의 틈새에서 펼쳐지는 서사 구조

『절창』의 서술 방식도 독특합니다. 두 명의 화자가 번갈아 등장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로 청자를 향해 말걸기를 합니다. 작가는 이 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누가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집니다. 화자의 성별·나이대·어조가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 독자는 자연스럽게 화자의 지점과 청자의 시점을 교차하며 읽게 됩니다. 예컨대, 아가씨 쪽 화법은 일부러 거칠게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독자가 화자의 태도와 거리를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야기 전개 중간에 드러나는 반전과 열린 결말은 독자가 그 구조 안에서 스스로 해석하게 만드는 여백을 확보합니다.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서사의 공백이 독자에게 질문을 남깁니다. 저는 이 지점을 읽으며 문학이 주는 힘은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 ‘불완전한 이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는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나 자신이 해석자가 되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 시대 ‘읽기’에 대한 성찰과 불안의 미학

구병모 작가는 『절창』에서 단지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쓰려 한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소설이란 축복받지 못한 존재들의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고, 이 작품은 그 말처럼 이해·오해·불안의 틈을 감각적으로 탐험합니다.

특히 그는 사람이 하나의 텍스트임을, 그리고 그 텍스트를 읽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오독을 전제하고 있음을 소설 안에서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사람들을 상처 입혀서 머릿속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 말고, 당신이 나한테서 듣고 싶은 게 또 있어?”라는 문장은 이러한 주제를 압축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절창』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타인과의 소통’, ‘독해 가능한가’, ‘얼마나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가’라는 질문을 문학적으로 풀어냅니다. 읽은 뒤에도 질문이 가시지 않고,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머릿속에서 맴도는 문장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이 책의 강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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