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주택』 리뷰 – 진짜 어른과 청춘의 간극을 잇는 소설
『순례주택』은 한 가족이 몰락 후 순례씨의 빌라에 들어가며 벌어지는 소동 속에서 진짜 어른됨과 “순례자”적 삶을 묻는 청소년 소설입니다. 코믹한 분위기 안에 담긴 삶의 질문이 깊이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망가진 삶이 이사 온 빌라, 순례의 시작점이 되다
수림이네 가족은 할아버지의 별세와 함께 빚더미에 오른 뒤, 외할아버지의 옛 연인이 소유한 ‘순례주택’으로 이사하게 됩니다. 부동산의 가치는 형편없지만, 그곳이야말로 모든 것이 뒤섞인 삶의 실험실처럼 작동합니다. 이사 첫날부터 삐걱거림이 시작됩니다. 조용한 복도, 낡은 창틀, 소리 나는 계단, 까치발로 올라야 하는 다락, 엉켜 있는 전선과 낡은 수도꼭지 — 이런 요소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연결됩니다. 매 순간 공간이 주는 불안감과 긴장은 수림이의 마음 상태와 겹쳐지며 ‘집’이라는 장소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관계와 상처가 공간 속에 깃든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순례씨는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는 자꾸 ‘온실 밖으로 나와 세상을 적응하라’는 뜻을 담은 규칙을 던지지만, 강요보다는 지켜보는 태도와 기다림이 더 자주 드러납니다. 수림이와의 대화,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 주변 세입자들과의 관계 —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순례주택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집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읽으며,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문장이 단순한 메타포가 아니라 실제 심리적 작동이라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세대와 가치의 충돌 속 두 사람의 동행 이야기
수림이는 16세 청소년으로, 부모세대의 문제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반면 순례씨는 75세의 노인으로, 인생 후반에 “순례자적 삶”을 표방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둘은 나이와 삶의 방식이 다르지만, 서로에게 배우고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특히 책은 “경계”를 자주 다룹니다 — 아파트와 빌라, 도시와 빈민가, 젊음과 노년, 가족과 타인, 욕망과 책임 사이에서 경계를 넘고 또 넘기는 순간들이 강조됩니다. 순례씨는 재산을 인위적으로 나누고 경계 없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의 경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림이는 그 경계 위에서 자주 중심을 잃지만, 순례씨 옆에서 조금씩 중심을 찾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함께 넘어가는 경험”의 힘을 느꼈습니다. 특정 세대가 주도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조금씩 건너는 관계의 방식이 이 소설의 중심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어른됨은 ‘정답 모드’보다는 ‘동행 모드’라는 깨달음을 남깁니다.
순례주택이 독자에게 묻는 삶의 질문들
이 소설은 단순히 성장담이 아닙니다. 독자에게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나에게 집은 무엇인가?”, “어른답게 산다는 건 어떤 태도인가?”, “경계를 인정하면서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같은 질문들입니다. 작가는 풍자를 섞은 유머, 코믹한 설정, 일상의 대사로 무거운 주제를 부드럽게 전달합니다. 순례씨의 엉뚱한 언행, 수림이의 솔직한 감정, 부모의 위선과 허영 — 이런 요소들이 반복되면서도 날카롭게 와닿습니다. 또한 책 말미에 줄자라는 상징물이 등장하는데, 살아가는 길을 자로 잰 듯 명확히 재려는 태도를 비껴가며 삶은 그보다 더 유연하고 진동하는 고리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비판적 관점에서는 전개가 다소 느리다거나 코믹 요소가 무게감 있는 갈등을 희석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느림과 간극이 오히려 독자에게 여지를 줍니다. 각자 자신의 속도로, 각자의 삶의 질문을 놓고 씨름할 수 있게 만드는 숨 고르기의 공간이 되어 줍니다. 『순례주택』은 청소년 문학을 넘어 세대 간 대화의 창을 열어 줍니다. 무너진 구조 속에서 서로를 탐색하며, 온전한 나와 온전한 너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길은 종착점이 아닌 순례이고, 독자가 그 길을 함께 걷기를 권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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