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 곳으로 - 백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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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 기억과 사랑이 교차하는 건축의 추리소설

건축가의 죽음과 미완의 건물,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인간의 감정.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공간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복원하는 감각적인 추리소설이다.

빛이 이끄는 곳으로 표지

빛과 기억이 뒤섞인 공간의 미로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죽은 건축가의 마지막 설계를 해석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젊은 건축학도가 스승의 잔해 속에서 ‘빛의 방향’을 찾아가는 여정은 단순한 미스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작가는 공간을 기억의 은유로 삼는다. 벽의 틈, 유리의 반사, 그림자의 흔들림까지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빛의 물리적 흐름을 감정의 심리적 리듬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건축의 언어를 빌려 ‘사람이 무엇을 남기고 사라지는가’를 묻는다. 각 장면은 영화처럼 세밀하게 묘사되어 독자가 마치 건물 안을 걸어 다니는 듯한 체험을 준다. 백희성은 추리적 구조 안에서 예술적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사건의 해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빛이 스스로를 비추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외롭고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설계도 속의 빛의 각도를 따라가며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장면이다. 그 ‘빛’은 단순한 조명이나 희망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고통스러운 도구다. 저자는 “모든 공간은 그 안에 남은 사람의 온도를 품는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은 추리소설이면서 동시에 치유의 기록이다.

건축가의 집, 비밀과 사랑의 교차점

소설의 중심 무대인 ‘윤건축사무소’는 인물들의 심리를 반영한 또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존재한다. 주인공은 사무소의 설계도를 해석하면서, 스승이 남긴 연인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비밀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라, ‘빛’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인간 관계의 본질로 확장된다. 백희성은 공간의 감각을 세밀하게 재현하면서도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다룬다. 스승과 제자, 연인과 탐정의 경계는 흐려지고, 결국 모든 인물은 자신이 만든 공간 속에서 길을 잃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작가는 인간관계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미로처럼 설계한다. 문 하나를 열면 또 다른 방이 나타나고, 그 방 안에는 잊혀진 기억의 조각이 놓여 있다. 결국 주인공이 찾는 것은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건축과 사랑, 빛과 그림자의 상징이 유기적으로 얽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문체는 차분하지만 감정의 깊이가 느껴진다. 백희성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고, 여백을 통해 울림을 만든다. 한 문단을 넘길 때마다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빛이 인도하는 길이 된 추리의 여정

이 작품의 후반부는 진실을 향한 여정이자, 스스로를 용서하는 과정이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결말은 ‘사건의 해결’보다 ‘사람의 이해’에 있다. 주인공은 스승의 유언처럼 남겨진 ‘빛의 방’을 완성하며, 미완의 건축물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한다. 그 장면에서 독자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저자는 ‘완성되지 않은 건물’을 인생의 은유로 사용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미완을 안고 살아가며, 그 미완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덮고 나면 잔잔한 슬픔과 함께 묘한 위로가 남는다. 삶의 불안과 상실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빛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감각적 문체와 철학적 사유가 공존하는 작품이다. 추리소설로 시작해 인문학적 성찰로 끝나는 이 여정은,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형태의 위로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믿음 아래, 백희성은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집’을 설계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오랜 여운이 남는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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