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욕망으로 삶을 증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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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진 현대 사회의 다양한 군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문제적인 욕망과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압도적인 몰입감과 강렬한 여운을 선사합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성해나의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는 그 제목부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혼모노(本物)'는 본래 '진짜', '실물'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단어지만, 온라인상에서는 특정 문화에 심취한 이들을 조롱하는 멸칭으로 변질되었다. 작가는 이처럼 의미가 전복된 단어를 통해,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진 우리 시대의 불안한 초상을 정면으로 겨눈다. 이 소설집은 '진짜란 무엇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붙들고, 각기 다른 인물과 상황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표제작인 「혼모노」는 이러한 주제 의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용했지만 이제는 신기를 잃어버린 늙은 무당 '문수'와, 유튜브를 통해 젊은 감각으로 인기를 얻는 신세대 무당 '신애기'. 문수에게 신애기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가짜'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야말로 더 이상 신과 소통하지 못하는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소설의 백미는 두 무당이 작두 위에서 서로의 진위를 겨루는 장면이다. 이 아슬아슬한 대결을 통해 작가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폭로한다. 신기가 진짜 재능인지, 혹은 대중을 현혹하는 연기인지 그 경계는 모호해지고, 독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진다.
이처럼 성해나의 소설들은 독자를 편안한 자리에 앉혀두지 않는다.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의 일상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존재론적 불안과 마주하게 만든다. SNS 속의 나, 현실의 나, 타인이 기대하는 나 사이에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이 소설집은 우리에게 당신이 믿고 있는 '진짜'는 과연 무엇에 근거하고 있느냐고 묻는 서늘한 질문지다.
그 질문을 마주하는 경험은 때로 불편하고 섬찟하지만, 동시에 짜릿한 지적 쾌감을 선사하며 우리를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세상의 줄 위를 걷는 듯한 이 독서 경험이야말로, 성해나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보통의 얼굴들, 그 기이한 욕망.

『혼모노』가 다루는 세계는 무속 신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해나는 스타트업, 건축, 예술, 정치 집회 등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공간들로 시선을 확장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이하고도 절실한 욕망을 해부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성공을 꿈꾸는 스타트업 대표,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작가, 정치적 신념에 따라 거리로 나선 사람들. 이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얼굴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평범한 얼굴 뒤에 숨겨진,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복잡하고 비틀린 욕망의 맨얼굴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예를 들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스타를 '진짜' 예술가로 계속 사랑할 수 있는지 고뇌하는 팬의 모습을 통해, 예술과 도덕의 분리라는 해묵은 논쟁을 오늘날의 팬덤 문화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린다. 또한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인물을 통해, 정치적 신념이 어떻게 한 개인의 정체성과 구원의 문제가 되는지를 탐구한다. 작가는 이들의 행동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계몽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이 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그 욕망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추적할 뿐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단순한 선인과 악인의 이분법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다면성을 마주하게 된다. 성해나의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진짜'를 갈망하지만, 그 방식은 때로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깊은 병리 현상을 발견한다. 확고한 진실이 사라진 시대, 사람들은 저마다의 믿음에 더욱 광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혼모노』는 바로 그 위태로운 믿음과 욕망의 풍경을 가장 현실적인 필치로 그려낸, 2025년 한국 사회의 생생한 르포르타주와 같다.

'혼모노'란 무엇인가, 삶으로 증명해야 할 이름.

그렇다면 이토록 진짜와 가짜가 혼재된 세상에서 '혼모노'가 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소설집을 관통하는 이 질문에 대해, 성해나는 명쾌한 답 대신 강렬한 이미지와 잊을 수 없는 순간들로 답을 대신한다.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시선은, '혼모노'가 고정된 실체나 자격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오히려 끊임없이 흔들리고 의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려는 처절한 '과정'이자 '태도'에 가깝다. 표제작의 마지막, 늙은 무당 문수가 피를 흘리며 작두를 타는 순간은 그 대표적인 예다. 신기를 잃어버려 더 이상 '진짜' 무당이 아닐지 모르는 그녀는, 바로 그 작두 위에서 피 흘리는 인간의 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낸다. 그 순간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한 인간의 절실함만이 남아 독자의 마음을 압도한다.
이는 작가가 '혼모노'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인 '장인'을 되찾으려는 시도와도 맞닿아 있다. 진정한 장인이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길을 닦아나가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성해나가 그리는 '혼모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스스로의 진실성을 증명해내고자 발버둥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선택이 항상 옳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치열함 자체를 긍정한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진실하게 걸어나가고자 하는 그 일로부터 결코 힘을 빼지 않으려는" 의지다.
『혼모노』를 덮고 나면, 우리 각자의 삶에서 '진짜'라고 믿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성해나는 이 압도적인 소설집을 통해, 그녀 자신이 현재 한국 문학의 가장 뜨거운 '혼모노'임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이 책은 한동안 당신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강렬하고도 문제적인 독서 경험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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