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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by lifewhispers 2025. 9. 24.

파친코 – 이민진

『파친코』는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 가족 4대의 삶을 그린 대서사 소설로, 역사 속에서 소외된 이들의 정체성, 생존, 사랑, 희생을 강렬하게 풀어냅니다.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민족과 역사의 무게까지 담아낸 작품입니다.

파친코 책 표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족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작은 하숙집을 운영하던 순자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가난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던 이들에게, 한 남자의 등장은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어린 순자는 부유한 일본 상인 한수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하지 못한 채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순자를 지키기 위해 일본으로 함께 떠나는 이삭 목사의 결단은 가족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며, 그곳에서 새로운 시련과 역경이 시작됩니다. 이민진 작가는 이 가족의 여정을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의 삶을 세밀하게 포착합니다. 일본에서 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소설은 한 개인의 사랑과 선택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비극적 운명을 드러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역사는 거대한 힘으로 우리를 휩쓸지만, 그 안에서 각자가 내린 작은 선택들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삶의 방향을 바꿔놓는다는 사실을 깊이 실감했습니다.

정체성과 생존 사이의 갈등

『파친코』의 가장 강렬한 주제 중 하나는 정체성에 대한 갈등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순자의 아이들과 손주 세대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살아갑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 직장, 주거지에서 끊임없는 차별을 겪지만, 자신들의 뿌리를 지우고 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입니다. 이 과정에서 선택하는 생존 방식은 각 인물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조선인임을 숨기고 일본인으로 동화되려 하고, 누군가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사회의 벽과 끝없이 싸웁니다. 특히 파친코 업계에서 일하는 손자 솔로몬의 이야기는 생존과 정체성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본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 자신의 뿌리와 충돌하는 순간,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어디에 속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속한 집단’과 ‘나 자신’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 보편적인 고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추천 대상과 느낀 점

『파친코』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가족, 사랑, 정체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개인의 선택과 세대 간의 갈등, 사회 구조와 역사적 차별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한 가족의 삶 속에 녹여낸 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속하는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이민진 작가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의 선택과 갈등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끕니다. 또한 『파친코』는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글로벌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적, 출신, 배경에 따라 차별과 배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파친코』는 과거의 비극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오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묵직한 고민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어도, 역사를 직시하는 태도는 분명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